山水間我亦절로

@ 草木香따라.. 水風響따라.. <11-160425- ⑥> : 無等山 草·木花 맞이 山行 ~ ♪.. ♬ ~

십년지기 2016. 6. 4. 03:04

    ★ 나는  살고자 하는 생명들에 둘려싸인  살고자 하는 생명이다.
       자기 生命에의 畏敬처럼   모든 생명의지들에게   동등한 생명에의 외경을  인정해야 할 필요성을 체험하는데  倫理가 있는 것이다.
       윤리란  모든 생명에 대한  무한히 확대된  책임이다 ~
    - 슈바이처

    ★ 우주 온 세상의 모든 물질의 총량은 한정되어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함에  이제부터라도  내 삶에 필요한 만큼만을  소유하거나 사용하련다.  그 이상을
    사용하거나 소유한다는 것은 貪慾이리라 ~
       탐욕이란 곧 다른 生命體생명체의 필요량을 착취한다는 것임을 비로서 깨닫는다...
    이제부터라도 바로 少慾知足하는 삶이리라 ~   소욕지족.. 소욕지족하리라 ~ 
    - 이름없는 이





물방울 안에 꽃 & 地球를 품안은 물방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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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고깔제비꽃 ~
































       박새 ~
















































       흰괭이눈.. 아직 반개상태다 ~
































































































































































       Landmark - 고추나무 & 노린재나무 ~
































       (흰)민둥뫼제비꽃 ~
















       버드나무, 병꽃나무 & 왕괴불나무 ~
















       버드나무(左) & 호랑버들(右) ~
















































       왕괴불나무 ~
















































































































































































































































































































       왕괴불나무 ~
















































































       흰털제비꽃 ~
















































       태백제비꽃.. 물결모양 잎 가장자리 톱니가 다소 안쪽으로 꼬부라졌다 ~
















































       태백제비꽃 ~
































































       큰개별꽃 ~
















































       큰괭이밥 ~
















































































       태백제비꽃 ~
































































       (흰)민둥뫼제비꽃.. 편평한 잎 가장자리 톱니가 규칙적이다 ~
















        ~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해            설      Ⅰ

[개관 정리]

▶ 성격 : 인식론적(철학적), 관념적, 상징적, 주지적

▶ 표현

  * 의미의 전개 과정이 논리적이면서도 점층적으로 심화 · 확대함.(그(너) → 나 → 우리)

* 소망을 나타내는 간절한 어조를 사용함.

* 사물(꽃)에 대한 인식론과 존재론을 배경으로 함.

 

▶ 중요 시어 및 시구 풀이

* 이름을 불러줌.( 명명(命名)행위 ) → 대상의 인식 및 의미 부여, 대상과의 관계 형성

* 이름 → 다른 것과 구별하고, 다른 것과 관계를 맺기 위해 붙이는 것.

* 하나의 몸짓

  → 단순히 움직이기만 할 뿐, 그 어떤 인격도 의미도 없는 존재

      사물이 본질적으로 존재하기 이전의, 즉 사물에 이름을 붙이기 전에 즉자적으로 놓여 있는 상태

* 꽃 → 의미있는 존재

* 빛깔과 향기 → 그에게 인식되기 전에 내가 지닌 나의 본질

* 우리들은 모두 / 무엇이 되고 싶다

   → 존재론적 소망 (무엇 = 상호 간에 의미 있는 존재 )

       사물은 홀로 존재하므로 고독하다. 이 고독함이 존재의 허무를 부르고 연대의식을 낳고 초월이나 초인적 상황을 갈망하게 되는데, 시인은 인간의 고독이 이 같은 연대의식을 낳는다고 말한다. '무엇이 되고 싶다'는 것은 이러한 연대의식의 확산이며, 존재의 보편적 삶의 질서에 대한 시적 자아의 의지다. 김춘수 시인은 이후 이 시를 개작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눈짓'으로 바꾸게 되는데, 시는 무의미의 순수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의미'라는 용어 자체도 배제한 셈이다.

 

주제 존재의 본질 구현에 대한 소망

▶ 김춘수 시인의 "꽃"에 대해서

     ㉠ 조남현 - '생명의 극치와 절정(존재론적 고뇌와 불안에 떨 게 만드는 지순지미한 세계)

     ㉡ 이형기 - '단순한 사물이 아닌 필경 관념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의 본질

     ㉢ 이승훈 - 시·공간적으로 한정되지 않는 개념  

⇒ 한국 시사에서 꽃을 제재로 한 시는 적지 않지만, 대부분이 이별의 한을 노래하거나 유미주의적인 관점에서 심미적인 대상으로 노래한 것이다. 이에 반해 김춘수의 꽃은 '구체적 사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시인의 관념을 대변하는 추상적 존재로서의 꽃'으로 처리되는 주지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이름을 불러주기 전(무의미한 존재)

▶ 2연 : 이름을 불러준 후   (의미있는 존재)

▶ 3연 : 의미화(인식)되기를 갈망하는 화자

▶ 4연 :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우리의 소망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시인이 교사로 재직할 무렵, 밤늦게 교실에 남아 있다가 갑자기 화병에 꽃힌 꽃을 보고 시의 화두가 생각나서 쓴 것이라고 한다. 꽃의 색깔은 선명하지만, 그 색깔은 금세 지워질지 모른다는 사실이 그의 존재론적 위기를 충동질했는지 모른다. 이 시는 '꽃'을 소재로 '사물'과 '이름' 및 '의미' 사이의 관계를 노래한 작품으로, 다분히 철학적인 내용을 깔고 있어서 정서적 공감과 더불어 지적인 이해가 또한 필요한 작품이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사물들이 늘려 있다.  이것들이 이름으로 불리워지기 전에는 정체불명의 대상에 지나지 않다가, 이름이 불리워짐으로써 이름을 불러준 대상과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구체적인 대상으로 인식이 되어진다.  이름이라는 것은 그 대상을 구체적으로 인식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이름이 불리워진다는 것은 최소한 그에게만큼은 내가 의미있는 대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기에, 시적 화자 역시 자신의 참모습에 어울리는 이름을 불러줄 그 누군가를 갈망하고 있다. 단순히 작위적이고 관습적인 이름이 아니라, 나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주기를 원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존재론적 소망이 되는 것이다.

이 시의 의미의 전개 과정은 아주 논리적이다.  이러한 의미 전개의 논리성은 우리 인식의 과정과 관련되는 것이라 하겠다. 1연에 제시된 그의 '몸짓'은 '명명'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2연에서 '꽃'으로 발전되고, 여기서 확인된 논리적 흐름을 근거로 하여 3연에서 '나'의 경우로 의미가 전이된다.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고 말한 후, 4연에서 우리 전부가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는 보편적 맥락으로 시를 종결짓고 있는 것이다.



◆ 작가의 말 - 연작시 '꽃'

내가 꽃을 소재로 하여 50년대 연작시를 한동안 쓴 데 대해서는 R. M 릴케 류의 존재론적 경향에 관심이 있었던 듯하다. 6 · 25 동란이 아직 그 결말을 짓지 못하고 있을 때이다. 나는 마산 중학(6년제)의 교사로 일을 보고 있었다. 교사(校舍)를 군(郡)에 내주고 판잣집인 임시 교사에서 수업을 하고 사무를 보고 할 때이다. 방과 후에 어둑어둑해질 무렵 나는 뭣 때문에 그랬는지 그 판잣집 교무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저만치 무슨 꽃일까, 꽃이 두어 송이 유리컵에 담겨 책상머리에 놓여 있었다. 그걸 나는 한참 동안 인상 깊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둠이 밀려오는 분위기 속에서 꽃들의 빛깔이 더욱 선명해지는 듯했다. 그 빛깔이 눈송이처럼 희다. 이런 일이 있은 지 하룬가 이틀 뒤에 나는 '꽃'이란 시를 쓰게 되었다. 힘들이지 않고 시가 써졌다.




해            설      Ⅱ



  요점 정리

지은이 : 김춘수(金春洙)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주지시, 상징시
갈래 : 내재율
어조 : 사물의 존재 의미를 파악하려는 관념적, 철학적, 명상적, 갈망적 어조
심상 : 비유적, 상징적 심상
성격 : 관념적, 주지적, 철학적, 인식론적
표현 : 그저 정체 불명의 대상에 지나지 않던 '그'는 호명에 의해 비로소 꽃으로 다가온다. 이것은 릴케 식의 시의 변용(變容) 곧 시적 변용이다. 시적 자아도 내가 이렇게 어느 대상을 인식해 간 것처럼 나도 누군가의 인식의 대상이 되고 싶음을 토로한다.
특징 : 명명(命名) 행위에 의한 인식을 바탕으로 함.
표현 : 의미의 점층적 확대(단계적인 의미의 심화 과정을 보임) , 시적 변용
       ┌ 나→너→우리
       └ 몸짓→꽃→눈짓
구성 :
① 대상을 인식하기 이전의 무의미한 존재(제1연) - 기
② 명명에 의해 의미 있는 존재로 다가옴(제2연) - 승 ( 나 - 주체 )
③ 존재의 본질 구현에 대한 근원적 갈망(제3연) - 전 ( 나 - 객체, 대상 )
④ 존재의 본질 구현에 대한 소망(제4연) - 결( 우리 - 객체, 주체 )
제재 : 꽃
주제 : 존재의 본질 구현에의 소망. 존재의 본질과 의미에 대한 탐구



  어휘와 구절

이름 : 허무로부터 존재를 이끌어 내 줄 수 있는, 본질을 규정하는 것
: 이름의 명명을 통해 존재성을 갖게 된 본질
빛깔과 향기(香氣) : 본질적인 요소
무엇 : 본질에 맞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어떠한 존재를 지시
의미(意味) : '꽃', '사랑' 등 여러 번의 퇴고를 거친 시어로 존재의 본질을 뜻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에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을 때, 즉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그의 존재를 인식하기 전에는 그는 나에게 무의미한 사물에 불과했었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존재에 대한 인식이자, 그 본질을 밝히는 행위가 된다.
하나의 몸짓 : 존재에 대한 인식이 이루어지기 이전의 무의미한 사물을 뜻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 꽃이 되었다. : 내가 그의 존재를 깨닫고 그에게 의미를 부여했을 때, 그는 비로소 '꽃'이라는 형상물이 되어 나와 의미 있는 관계를 이루게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 그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가치와 본질에 맞는 의미를 부여하였듯이
빛깔과 향기(香氣) : 사물의 본질을 의미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 누군가에게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다.
그에게로 가서 나도 / 그의 꽃이 되고 싶다. : 그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 무엇이 되고 싶다. : 의미 없는 존재, 즉 아무런 가치가 없는 무(無)의 존재에서 본질에 따라 가치를 인정받는 존재가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 눈짓이 되고 싶다. :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의 의미가 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기를 소망한다. 이는 곧 사랑의 관계를 뜻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상당히 까다로운 철학적, 관념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 문제란 세상의 수많은 사물과 그 이름 및 의미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제1, 2연이 특히 이 점에서 중요하다.

 세상에는 많은 사물들이 있다. 그러나 그 사물들이 원래부터 어떤 이름과 의미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이름이란 누군가가 사물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것을 다른 것들로부터 구별하고자 해서 `붙이는' 것이다. 이렇게 이름을 붙임으로 해서 사물과 거기에 이름을 붙인 사람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생기고, 그 관계가 곧 그들 사이의 `의미'가 된다. 따라서, 아직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사물은 이름이 없는 동시에 어떤 다른 존재(사람)에게 아직 의미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단지 그 자체로 존재하는 사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시인이 말하고 있는 것은 이런 생각이다. 그것을 말하기 위하여 꽃이라는 사물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이 경우 꼭 꽃을 선택해야 할 이유는 없다.)

 제1연이 말하듯이 꽃은 내가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다만 저 혼자 있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수많은 이름 없는 사물의 하나였을 따름이다. 그런 사물에 대해 내가 `꽃'이니 `장미'니 `코스모스'니 하는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그것은 `나에게로 와서' 즉, 나와의 관계 속에서 꽃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름을 붙이는 일은 사물이 의미를 가지도록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이해하면 제3, 4연도 자연스럽게 풀릴 수 있다. 그 내용은 내가 어떤 사물에게 꽃이라는 이름과 의미를 주었듯이 나에게도 누가 알맞는 이름과 의미를 달라는 것이다.

 제4연에서 그것은 우리 모두가 서로에 대해서 무엇인가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소망으로 확대된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이름'이란 김 아무개, 이 아무개 하는 관습적인 이름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의 참된 모습과 가치를 이해하면서 서로에게 부여해 주는 `진정한 이름'이다.

 다시 말하여, 시인은 틀에 박힌 관습적 관계를 넘어서 사물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어져야 할 진정한 관계, 진정한 사랑, 진정한 이름, 진정한 의미 등에 대한 소망을 노래한 것이다. 그 간절한 소망은 제3, 4연의 호소하는 듯한 어조에도 나타난다. [해설: 김흥규]



 참고 자료

김춘수의 '무의미의 시'에 대한 시론

 사생(寫生)이라고 하지만, 있는 실재(實在) 풍경을 그대로 그리지는 않는다. 대상과 배경과의 위치를 실재와는 전혀 다르게 배치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실지의 풍경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만들게 된다. 풍경의, 또는 대상의 재구성이다. 이 과정에서 논리가 끼어들게 되고, 자유 연상이 개입 된다.

 논리와 자유 연상이 더욱 날카롭게 간여하게 되면 대상의 형태는 부숴지고, 마침내 대상마저 소멸한다. 무의미의 詩가 이리하여 탄생한다.

 그에 의하면 의미는 산문에 보다 어울리지만 무의미는 시의 형식에만 알맞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무의미는 산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는 시 고유의 영역임을 주장한다. 이것은 의미의 시에 익숙했던 우리의 전통적인 시관에 도전한 것이었다.

 또한 사물에 대한 일체의 판단이나 선입관을 중지하는 방식을 통하여 의미 해체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의 60년대 시 '처용', '처용 단장', '샤걀의 마을에 내리는 눈'은 이런 대표적인 작품의 예이다.

 '꽃'에 나타난 작가의 존재론

  이 시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애송되는 시이다. 너와 나를 연인 관계에 놓인 사람으로 대치하여, 서로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는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 시는 이런 평범한 연애시의 범주에 안주하고 있는 작품이 아니다. 이보다는 더 넓은 의미를 가진 인간 존재의 본질을 시적 언어로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던 의미 없는 것에서, 상호 인식을 통하여 의미 있는 것, 또는 존재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진리를 형상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시이다.

 일찍이 하이데거는 인간의 이런 존재 인식의 수단을 언어라고 말한 바 있다. 즉, 언어를 '존재의 집'으로 파악한 것이다. 여기서 언어라는 것은 단순한 일상어가 아니다. 그것은 일상어의 가장 정제된 형태로서의 시적 언어를 가리킴은 물론이다. 아울러 이 말은 인간이 시 또는 시적 언어를 통하여 자기 존재를 표현한다는 말이다.



  작자 소개

김춘수 金春洙 1922.11.25 -  . 경남 충무시 동호동 출생. 경지중학을 졸업하고 니온대한 예술과 3학년 중퇴. 통영중학교.마산고등학교 교사.마산대학 교수.부산대학 연세대학(부산분교) 강사를 거쳐 경북대학 문리대 교수. 현재 한국시인협회 회장.

 1946년 해방 1주년기념 사화집 <날개>에 시'애가'를 발효하면서 시작을 시작했으며,대구지방에 발행된 동인지 <죽순>에 시 '온실'외 1편을 발표.

 첫 시집 <구름과 장미>가 발행됨으로써 문단에 등단, 이어 시 <산악>,<사>,<기(旗)>,<모나리자에게>를 발표,문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주로 <문학예술>,<현대문학>,<사상계>,<현대시학> 등에서 창작활동과 평론활동을 전개했다.

 시집으로는 첫 시집 외에 <늪>,<기>,<인연(隣人),<제일시집>,<꽃의 소묘>,<부타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타령조 기타>,<처용>,<김춘수시선>,<남천(南天)>,<근역서제>,<비에 젖은 달>,<김춘수전집>,<처용이후>,<김춘수>등과 시론집으로는 <세계현대시감상>,<한국현대시형태론>,<시론> 등을 간행.

 그의 초기의 경향은 릴케의 영향을 받았으며,시가 아니고서는 표현할수 없는 사물의 정확성과 치밀설 , 진실성을 추구하였으나, 50년대에 들어서면서 릴케의 형행에서 벗어나,이른바 무의미의 시를 쓰게 되었으며 사실을 분명히 지시하는 산문적인 성격의 문장을 시의 형식으로 도입하였는데 <현대시학>연재 장시 '처용단장'에서 부터는 설명적 요소를 거세해버린 이미지 작품으로 변모하였다.

 경력 상의 특이점으로는 광주 항쟁이후 태동한 5공화국 독재 정권 하에서 자신의 지론인 순수시, 무의미 시의 철학과는 정반대로 당시 민정당의 전국구 국회의원이 되어 그 '순수시의 순수성'이 지닌 불순한 의도를 의심받게 되었다. 이는 미당 서정주의 전두환 찬양 연설과 함께 당시 젊은 문학 지망생들의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희대의 사건이었다.






    ★ 우주 온 생명체들은 모두 다 행복할지이다.. 평안할지이다.. 안락할지이다 ~ - 숫타니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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